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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ng

국가의 역사에는 변곡점(變曲點)이 있다.

Updated: Apr 17, 2018

그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지점이다.

그 시점, 그 순간에는 인식 못한다. 먼 훗날 되돌아 볼 때 비로서 실감한다.

변곡점은 우연으로 인해 도래한 것일 수도, 응축된 동인(動因)들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원인으로 초래됐든 그 이면에는 변곡점을 낳게 한 사람이 존재한다. .

고려왕조의 몰락과 이성계, 임진왜란과 이순신, 한일합방과 이완용, 5.16과 박정희.

지난 700여년 사이 한반도의 역사에 크고 작은 변곡점을 태동시켰던 ‘개인’들이다.

지금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있다.

대한민국의 향후 천년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역사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 주역은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이다.

원튼 원치 않았든 3인에게 남북한 7,500만명은 명운을 맡겨놓고 있다.

세 사람은 각국의 수반으로서 국가와 국익에 기초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맨 마지막의 판단은 결국 개인에 종속된다.

이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식, 의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역사의 향배가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행은 이 3인이 ‘최악의 조합’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한결 같이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면면들이 그렇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함은 한치 앞을 못 내다보게 한다. 두 사람 다 돌발 사건

하나로 ‘판을 깰 수도 있는’ 휘발성이 그득한 캐릭터다.

게다가 미국과 북한은 말 그대로 치킨 게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어느 쪽이든

양보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렇게 꼬여 있는 상황에 키를 쥔 두 사람의 무모함이

더해질 경우 파국은 불가피하다.. .

이런 국면이기에 문재인은 사실, 다소의 움직일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연은 아니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무게를 보태느냐에 따라 북핵 처리에 있어 역

할을 해낼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엿 보인 문재인의 ‘운전 행태’는 고개를 젓게 만든다.

안이한 현실인식, 실효성 없는 대화 주장, 대책 없는 모호함은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게’

만들었다.

사드 배치 갈등이 웅변으로 증명한다.

애초부터 씨도 안 먹힐 김정은을 파악 못하고 엉거주춤 ‘사드 카드’를 내보이다가 면박

만 당했다.

국가안보에 관한 것 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고 중국에 잘라 말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줍쟎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결국 판만 키웠다.

북핵 만큼은 좌고우면해서는 안될 사안으로 일찍부터 확실한 입장정리가 불가피함에도

속 들여다 뵈는 갈짓자 행태로 미국에게 의구심만 심어줬다.

결국 끌려 다니다 배치는 했지만 동맹으로부터는 불신을, 적국으로부터는 비웃음만 샀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안이함과 방관 속에 오늘에 이른 북한의 핵강국화는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

다.

1994년 미국은 영변 핵원자로를 치려했다. 당시 북한의 핵능력은 걸음마도 안되는 수준

이었다. 고작 1-2기 정도의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었다.

그럼에도 북은 '불바다'를 위협했다. 미국도 주저 끝에 북에 대한 무력조치를 접었다.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방치였다.

한국은 북핵이라는 암세포가 얼마나 커질지 몰랐다. 출혈을 감수하고 베어내기 보다는

손쉬운 평화와 대화를 택했다. 한국이 모아주는 햇빛을 받아가며 북핵은 무럭무럭 자라

났다.

23년이 흐른 지금 북핵은 영변 수준의 핵이 아니다.

50-60기의 핵탄두 보유에, ICBM 사거리는 미동부를 위협하고 있다. 수소폭탄에 EMP탄은

미국 조차도 떨게 만든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23년 전의 재판이다.

북의 불바다 위협도, 한국의 북에 대한 무력조치 반대도, 미국의 망설임도 똑 같다.

달라진 것은 북핵이 손댈 수 없는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것 뿐이다.

장난감 핵으로도 한국을 고양이 쥐 몰듯 하던 북한이다. 이제 김정은의 안중에 한국은

없다.

한국은 지금 엄중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답은 23년 뒤를 생각해 보면 된다. 지금 또 다시 23년 전과 같은 방식을 답습할 경우

그 때 한반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를 헤아려 보라는 말이다.

아마도 북한은 ‘언터처블’로 자리매김돼 있을 것이다. 미국,러시아,중국 다음 가는 확실한

세계 핵4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을 가능성이 높다. 50대의 노련한 김정은은 지금 시진핑

이 홍콩 다루듯 핵 인질로 전락한 남한을 농락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북핵사태는 물론 문재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내일의 북핵결과는, 한국 몫

에 관한 한 오롯이 문재인이 걸머져야 한다.

북한핵은 분명 한국 역사에 중차대한 변곡점으로 자리할 것이다.

후세의 사가들은 북한핵 이전의 한국과 북한핵 이후의 한국으로 구분지을 지 모른다.

그 변곡점의 접점에 3인이 자리하고 있다.

3인의 생각과 판단, 결정에 목이 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3인 가운데 트럼프와 김정은은 한국의 영역 너머에 있다.

그나마 문재인만이 유일하게 근접 가능한 존재다.

문제는 문재인이다.

유감스럽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그의 안목과 인식은 운동권 범주를 못 벗어나 있는 듯 하

다.

이제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다.

빠르면 수개월내, 늦어도 1-2년내에 북한핵은 종국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히틀러가 라인 지역 수복, 오스트리아 합병 및 체코슬로바키아 일부 영토 요구 등 노골

적으로 야욕을 드러낼 때 프랑스와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평화적 해결이라는 환상을

기대하며 그의 요구에 응했다.

체임벌린은 특히 1938년 히틀러와의 뮌헨 회담에서 돌아와 "앞으로 영국과 독일간의 분

규는 전쟁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협정문을 흔들며 평화를 선언했다. 체임벌

린과 지지자들은 "이제 전쟁은 없다. 영국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환호

했다.

주변국들의 의지 부재와 '평화 구걸'을 간파한 히틀러는 마음 놓고 유럽을 유린했다.

체임벌린의 환상은 히틀러의 '오판'을 야기시켰고 결과적으로 2차대전 발발의 변곡점으로

기능했다.

이후, 유럽 대륙이 나치에 온통 짓밟히고 섬나라만 달랑 남은 상황에 처했을 때 처칠은

결사대응을 택했다. 영국의 미래를 위해 국민에게 피와 땀을 요구한 처칠의 결단은 또한

2차대전의 물꼬를 바꾸는 변곡점 역할을 했다.

역사는 반복을 통해 교훈을 준다.

동아시아의 ‘어린 히틀러’ 김정은은 지금 미,중,한,일을 흔들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은 어떤 변곡점을 추구하고 있는가.

체임벌린과 처칠 가운데 누가 걸었던 길을 가려하는가.

5년 정권의 시야를 넘어 50년, 500년 뒤를 내다 볼 혜안을 그는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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